△ 책 페이지가 붙어 있는 파본의 예



제가 예전에 했었던 모 게임에서 최근 아트북인지 설정집인지를 발매했는데 내용상 오류가 발생해 이미 한 페이지는 통째로 스티커가 붙어 있고, 거기에 또 오류가 발견되어 추가 스티커가 발송된다고 해 구매자들이 크게 성난 상태라 들었습니다.


여기에 어느 구매자는 판매사측에 예약특전이 포함된 초판본을 반송하면서 2쇄와 함께 예약특전을 수령하기를 원한다며 항의전화를 했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오늘 블로그에서 잡담하고자 하는 내용은 바로 이겁니다. 과연 '예약특전이 포함된 초판본(1쇄)를 수령 거부하면서 특전과 함께 2쇄(정확히는 2판)를 요구하는 행위'가 옳은 것인가.


위에서 말한 구매자가 주장하기를 '나는 파본을 구입한 것이 아니므로 온전한 책을 받아야 하며, 초판 사전예약자이므로 특전도 받아야 한다'라고 하는데, 이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인쇄 오류난 초판과 파본을 동일시' 하고 있다는 겁니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오류가 없는 책을 받고자 하는 건 당연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제작측의 검토 착오나 인쇄소의 실수로 인해 책에는 얼마든지 오류가 생길 여지가 있습니다. 페이지가 찢어지거나 백지거나 글자가 뭉개지는 등의 어딜 봐도 '파본'인 책이 구매자에게 전달되었다면 이는 교환의 사유가 되며, 원한다면 환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판 1쇄에서 나타난 공통된 인쇄 오류'가 생긴 책들은 인쇄 오류일 뿐이지 파본인 것은 아닙니다.


출판사측에서는 공식 사이트나 영향력 있는 매체를 통해 인쇄 오류난 사항을 정정하고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수정 스티커를 발송해주는 정도의 대응을 하면 충분히 할 일은 한 겁니다. 실제로 이 출판사는 구매자 전원에게 일괄 수정 스티커와 사과 보상 포스터 발송을 약속했으며 환불을 요구한 사람들에게는 환불 처리까지 해서 이보다 더 깔끔할 수 없게 후속 대응을 진행했습니다.


인쇄 오류가 해결되는 건 당연하게도 다음 판입니다. (초판본이 충분히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 2쇄, 3쇄로 이어지는 것이고, 수정 혹은 변경 사항이 있으면 2판, 3판이 찍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오류가 있는 초판본을 사는 건 바보같은 짓 아니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런 상황을 위해 출판사측에서는 초판구매자를 상대로 특전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특전과 함께 오류가 있는 1쇄를 받을지, 수령을 거부하고 환불할지가 지금 위 상황에서 구매자가 할 수 있는 판단이지, '특전은 받아 챙겨야겠지만 오류 수정된 2판도 받아야 겠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구매자는 특전이 붙은 초판본을 구입한 것'이므로 수정판을 받고자 한다면 특전은 포기해야하며 그 이상의 요구를 하는 건 과욕입니다.



PS) 블로그 글을 다 쓰고 모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구매자가 출판사에 요청한 것이 '오류가 수정된 2판 + 초판 특전 + 초판 오류 사과 포스터'까지 아주 그냥 특전도 받고 보상도 받고 수정판까지 받아 챙기겠다는 대단한 요구를 했더군요. 반품과 환불은 당연한 소비자의 권리지만 그 선을 넘어서면 그건 더이상 '일반 소비자'가 아닙니다. 이런 걸 바로 블랙 컨슈머라고 하는 겁니다. 이 구매자는 책 한 권의 가격을 지불했고, 딱 책 한 권 만큼의 권리만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그 이상을 출판사에 요구하며 인터넷을 통해 출판사를 악담하며 여론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출판사를 괴롭히고 있으니 정말 전형적인 블랙 컨슈머의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구 대상이 금전이 아닐 뿐이지 정말 악질중의 악질입니다 이건.

Posted by 빈둥거리는 포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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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던 책쟁이 2021.02.15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이상하게 게임업계 쪽에서 출간하는 책들은 내용상 오류, 오타, 비문에 굉장히 관용적이고 너그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더군요. 그렇게 된 이유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는 유저분이 많아서인가 생각해 봅니다.

    책이 출간되기 위해서는, 작가에게 원고를 받고, 편집자가 첨삭을 하고, 교정인이 교정·교열을 봅니다. 보통 그렇게 3번 정도를 반복해서 1교, 2교, 3교라고 부르는데 그 책을 쓴 사람과, 국문학 전공자와, 편집 전문가가 책 한 권을 위해서 오롯이 갈려나가는 시간입니다. 이들은 이 책에 한해서 가장 권위자가 됩니다.그 뒤 북 디자이너가 조판을 하고 책을 생산합니다.

    그런데 독자들이 오류를 지적할 정도로 책을 만들었다는 것은, 프로들이 업무를 방기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인지라 3명이 모여서 일을 하더라도, 실수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초판본에 내용상 오류가 나면 최대한 뒷수습을 위해 노력합니다.
    보통 여력이 있는 대형 출판사는 전권 폐기라는 강수를 두기도 합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60318082500005

    위 기사에 보시면 내용상 오류도 파본으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파본이 무엇이냐? 한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제본이나 인쇄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손된 책.'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좀 다른 정의를 볼 수 있습니다.

    'an imperfect book, an incorrectly collated book.' 불완전하거나 잘못 모아진 책을 파본이라 부릅니다.

    내용상의 오류도 엄연한 파본입니다. 책장을 너덜너덜하게 만든 스티커로 얼룩진 책을 초판이라고 살 독자들은 없을 테니까요.

    p.s. 2판 + 초판 특전 + 초판 오류 사과 포스터는 과한 면이 확실히 있군요. 그러나 소비자가 지불한 책 한 권의 가격은 온전한 책에 대한 것이요, 온전한 책에 대한 권리입니다. 초판 특전은 초판본에 있을 오류에 대한 사과표시가 아닌 초판을 일부러 찾아 구매해줄 정도로 헌신적인 소비자에 대한 감사표시인 동시에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상술입니다.

    일반적인 출판사라 저렇게 장사하면 망할 텐데, 이쪽 업계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왠지 슬프네요.